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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세컨
금요일엔 꼭 만나기로 해요 우리 닮은 친구들이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면 아주 단순해진 얼굴로 창문을 열기로 해요 죽음힘을 다해 초록을 내뿜는 나무처럼 점점 얇아지기로 해요 황혼이었던 사람과 바다로 떠난 사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금요일은 온통 귀뿐이에요 흘러나갔던 친구들이 한 명씩 귓속으로 쏟아지는 이 시끄러운 밤은 주름투성이 커튼에 휘감겨 숨을 거두는 고양이처럼 아주 조금 울고 싶어요 숨은그림찾기는 그만 하기로 해요 여름이 여름을 향해 뒷걸음질치고 이내 지겨워진 나무들이 이파리를 뚝뚝 떨구는 너무나 환한 아침 우린 가장 아름다운 정오가 되어 다신 나타나지 말기로 해요 어제 말고 오늘 말고 내일은 꼭 사라지기로 해요 / 프라이데이 클럽, 김경인
상자를 만들어요. 십 년 됐어요. 당신에게 주려고요. 상자는 잔디밭에 있어요. 흔들리지 않는 잔디 풀 옆에. 혼자 흔들리는 잔디 풀 옆에. 아니 흩어지는 구름 아래. 매애애애 하나로 뭉쳐져 똑같은 모양이 되는 양 떼들 아래. 아니, 올라가는 층계. 라니, 내려가는 층계. 그곳에 상자는 없어요. 아름다운 잔디밭엔 잔디가 없어요. 안녕, 엄마, 안녕, 동생아. 이제 자러 갈 시간이야. 다 버렸어요. 새 장난감들로 채웠어요. 아니, 아니, 상자 말구요. 상자는 말이 없어요, 당신은 다 알고 있지요? 나는 칠월의 무성한 포도 넝쿨, 상자에 묶인 어여쁜 빨강 리본을 그리워해요. 상자엔 빨갛고 기다란 싸구려 노끈, 노끈 아래엔 물고기 시체, 혹시 울어요? 물속같이? 종이가 금방 찢어질 것 같아요. 상자를 만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