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윤동주 (3)
단명세컨
편지, 윤동주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은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은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 편지, 윤동주
시
2020. 11. 19. 03:09
이별, 윤동주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 그리고 크다란 기관차는 빼-액- 울며,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은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더운 손의 맛과 구슬 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 이별, 윤동주
시
2020. 11. 14. 23:10
소년,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소년, 윤동주
시
2020. 11. 14. 23:10